이 파트는 미국 연방항공청(FAA) 『조종사 항공지식 핸드북』(Pilot’s Handbook of Aeronautical Knowledge) 1장 「비행 입문」의 앞부분입니다. 인류가 하늘을 동경한 역사부터, 미국 항공 규제와 FAA가 생기기까지의 제도 흐름을 원문 순서대로 옮깁니다.
이 핸드북이 다루는 것
『조종사 항공지식 핸드북』은 비행을 배우는 학생 조종사와, 상위 자격을 준비하는 조종사에게 기초 지식을 제공합니다. 특화된 비행 주제의 세부 내용은 해당 FAA 핸드북과 자문회람(Advisory Circular, AC)을 보면 됩니다.
1장은 비행의 짧은 역사, 민간항공에서 FAA의 역사와 역할, FAA 규정과 기준, 정부 참고문헌과 간행물, 조종사 자격 요건, 비행교육을 받는 경로, 자격증 비행교관(Certificated Flight Instructor, CFI)과 지정 실기시험관(Designated Pilot Examiner, DPE)의 역할, 실기시험기준(Practical Test Standards, PTS), 그리고 업계가 개발해 장차 PTS를 대체하게 된 항공인 자격기준(Airman Certification Standards, ACS) 체계를 소개합니다. (역주: 국내 조종사 자격은 항공안전법과 국토교통부·한국교통안전공단(TS) 기준을 따릅니다. 미국 ACS/PTS와 시험 체계가 다릅니다.)
비행의 역사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새의 비행을 바라보며 따라 하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습니다. 새의 작은 근육이 몸을 들어 올려 공중에 머물게 한다면, 인간의 더 큰 근육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논리가 통용됐습니다. 그러나 새의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근육·힘줄·심장·호흡계, 그리고 오늘날 비행기의 플랩·가변 캠버·스포일러와 닮은 장치들이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리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수천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이 새처럼 날려는 시도에서 사라졌습니다.
날개를 달고 절벽에서 뛰어내린 최초의 “새-인간”이 누구인지는 시간의 안개 속에 묻혔습니다. 실패할 때마다 하늘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풀어야 할 질문이 남았습니다. 날갯짓하던 이들은 어디서 잘못됐을까. 철학자, 과학자, 발명가가 해답을 내놓았지만, 인간 몸에 날개를 붙여 새처럼 솟구치게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1500년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공책에 비행기계 스케치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새와 같은 날개라는 생각에 매달린 탓에,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결함이 있었습니다.

1655년이 되자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발명가인 로버트 훅(Robert Hooke)은, 인간 몸에는 인공 날개를 구동할 힘이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인간 비행에는 어떤 형태의 인공 추진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하늘을 향한 탐구는 다른 방향으로도 갈라졌습니다. 1783년, 조제프와 에티엔 몽골피에(Joseph and Étienne Montgolfier)가 만든 최초의 유인 열기구가 23분 동안 날았습니다. 열흘 뒤, 자크 샤를(Jacques Charles) 교수가 최초의 가스 기구를 띄웠습니다. 기구 비행 열풍이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고, 한동안 비행 애호가들은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의 약속에 전문성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공중에서의 위엄과 달리, 기구는 순풍으로만 가는 일방통행 천 뭉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기구는 양력 문제를 풀었지만, 그것이 인간 비행의 문제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속도와 방향을 조종하는 능력은 기구 비행가들의 손 밖에 있었습니다. 그 해답은 동양에서 2,000년 동안 익숙했던, 그러나 서양에는 13세기에야 들어온 장난감—연(kite)—에 있었습니다. 중국인이 공중 관측, 항해 바람 시험, 신호, 장난감으로 쓰던 연에는, 공기보다 무거운 장치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실마리가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연을 연구하면 날개 비행의 비밀이 풀린다고 믿은 사람 중 하나가 조지 케일리 경(Sir George Cayley)입니다. 몽골피에 기구 비행보다 10년 먼저 영국에서 태어난 케일리는, 84년의 생애 동안 연 모양 날개로 받치는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를 개발하려 했습니다. “항공 항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케일리는 현대 항공역학이 서 있는 기본 원리를 발견했고, 최초로 성공한 비행 모형으로 인정받는 것을 만들었으며, 사람을 태운 최초의 실물 크기 비행기를 시험했습니다.
케일리가 세상을 떠난 뒤 반세기 동안, 수많은 과학자·비행 애호가·발명가가 동력 비행기를 만들려 했습니다. 동체 안에 증기기관을 넣고 거대한 단엽기를 설계한 윌리엄 새뮤얼 헨슨(William Samuel Henson), 공기보다 무거운 항공기로 인간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같은 이들이 동력 비행의 꿈을 향해 일했습니다. 그 꿈은 1903년 12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에서 윌버와 오빌 라이트(Wilbur and Orville Wright)에 의해 현실이 됐습니다.
오하이오 데이턴의 자전거 제작자였던 라이트 형제는 연, 직접 만든 풍동, 복엽기에 넣을 여러 엔진을 가지고 4년을 실험했습니다. 비행에서 그들이 이룬 큰 성과 중 하나는, “만들어 보고 지켜보는” 방식이 아니라 과학적 접근의 가치를 입증한 것입니다. 복엽기 「플라이어(The Flyer)」는 영감 있는 설계·공학과 뛰어난 제작 솜씨를 결합했습니다.

12월 17일 오후까지 라이트 형제는 네 번의 비행으로 합계 98초를 날았습니다. 비행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역사
유인 비행 초기에는 정책을 세우거나 안전 기준을 규제·집행할 정부 기구가 없어서, 항공은 무법지대에 가까웠습니다. 누구든 정부 감독 없이 비행하고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 비행의 대부분은 스포츠였습니다. 항공은 비쌌고 부유한 이들의 놀이터가 됐습니다. 초기 비행기는 작아서, 많은 사람이 상업적 가치를 의심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믿은 한 무리가 있었고, 그들이 현대 항공여객의 씨앗이 됐습니다.
플로리다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살던 사업가 P. E. 팬슬러(P. E. Fansler)는 미주리 세인트루이스의 브노아 항공기 회사(Benoist Aircraft Company) 톰 브노아(Tom Benoist)에게, 세인트피터즈버그에서 수로 건너 탬파까지 노선을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브노아는 자신의 “세이프티 퍼스트(Safety First)” 비행정(airboat)을 쓰자고 했고, 두 사람은 미국에서 최초의 정기 항공사가 될 계약에 서명했습니다. 첫 항공기가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인도되어 1913년 12월 31일 시험비행을 했습니다.

공개 경매가 최초의 유료 항공 승객이 될 영예를 정했습니다. 세인트피터즈버그 전 시장 A. C. 페일(A. C. Pheil)이 400달러로 낙찰받아, 최초의 유료 항공 승객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1914년 1월 1일, 최초의 정기 항공편이 운항됐습니다. 거리는 21마일, 맞바람 때문에 23분이 걸렸습니다. 돌아오는 편은 20분이었습니다. 플로리다 사업가들이 보조금을 댄 이 노선은 4개월 동안 이어졌고, 1인당 5달러, 또는 화물 100파운드당 5달러로 정기 운송을 제공했습니다. 개업 직후 브노아는 이륙·착륙 때 물보라를 더 막아 주는 새 비행정을 투입했습니다. 노선도 머나티, 브레이든턴, 새러소타까지 늘어나, 수익성 있는 상업 항공이라는 생각에 힘을 실었습니다.
세인트피터즈버그–탬파 비행정 노선은 겨울 동안 이어지다 겨울 관광 시즌이 끝나자 운항을 멈췄습니다. 항공사는 4개월만 운영했지만, 1,205명을 부상 없이 실어 날랐습니다. 이 실험은 상업 여객 항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비행기가 여러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전쟁은 정찰 플랫폼으로 시작됐지만, 1918년이 되면 비행기는 전투기, 폭격기, 훈련기는 물론 정찰기까지 대량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항공을 옹호하는 이들은 비행기를 쓸 다른 길을 계속 찾았습니다. 항공우편이 인기 있는 아이디어였지만, 전쟁 때문에 우체국은 비행기를 손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1918년 전쟁부와 우체국이 합의했습니다. 육군은 우편 업무로 조종사에게 장거리 비행을 훈련시키기로 했습니다. 최초의 항공우편 비행은 1918년 5월 15일 뉴욕과 워싱턴 D.C. 사이에서 이뤄졌습니다. 화려한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조종사가 길을 잃고 잘못된 비행장에 착륙했습니다. 1918년 8월, 미국 우체국이 항공우편 노선을 넘겨받아, 기존 육군 항공우편 조종사와 비행기를 우체국 직원으로 편입했습니다.
대륙횡단 항공우편 노선
항공우편 노선은 대륙횡단 우편 노선이 개통될 때까지 계속 늘어났습니다. 이 노선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총 2,612마일, 중간에 13개 기착지가 있었습니다. 1921년 뉴욕–샌프란시스코 개통 노선에는 드하빌랜드 DH-4가 투입됐습니다.

1926년 5월 20일 의회는 항공상업법(Air Commerce Act)을 통과시켰고, 이 법은 미국 항공의 초석이 됐습니다. 비행기가 연방정부의 안전 지원 없이는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고 느낀 항공 업계 지도자들이 이 입법을 뒷받침했습니다.
항공상업법은 상무장관에게 항공 상업을 육성하고, 항공교통 규칙을 제정·집행하며, 조종사에게 면허를 주고, 항공기를 감항 증명하며, 항공로를 설정하고, 항행 보조시설을 운용·유지할 책임을 지웠습니다. 상무부는 항공 산업을 감독하는 것이 주된 임무인 새 항공국(Aeronautics Branch)을 만들었습니다. 항공국은 또한 전국 조명 항공로 체계의 건설과 운용을 넘겨받았습니다. 이 체계는 우체국이 대륙횡단 항공우편 노선의 일부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상무부는 항공 통신에서 큰 진전을 이뤘고, 그 중 하나가 항법에 유효한 수단인 무선 비콘의 도입이었습니다.
표준 비콘 탑은 대략 10마일 간격으로 세워졌고, 높이 51피트에 강력한 회전등이 달려 있었습니다. 회전등 아래에는 항공로를 따라 앞뒤를 가리키는 코스라이트 두 개가 있었습니다. 코스라이트는 비콘 번호를 식별하는 부호를 점멸했습니다. 탑은 보통 길이 70피트의 콘크리트 화살표 한가운데 섰고, 발전기 창고가 필요하면 화살의 “깃털” 쪽에 있었습니다.

조종사와 정비사의 연방 자격
상무부 항공국은 1927년 4월 6일 첫 면허를 발급하며 조종사 자격을 시작했습니다. 받은 사람은 항공국장 윌리엄 P. 매크래컨 주니어(William P. MacCracken, Jr.)였습니다. 더 이상 현역 조종사가 아니던 오빌 라이트는 그 영예를 사양했습니다. 매크래컨의 면허는 연방정부 민간 기관이 조종사에게 발급한 첫 면허였습니다. 약 3개월 뒤 항공국은 첫 연방 항공기 정비사 면허를 발급했습니다.

안전에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이 항공기 형식 증명 체계의 확립이었습니다. 1927년 3월 29일 항공국은 3인승 개방형 복엽기 불 에어스터 CA-3(Buhl Airster CA-3)에 첫 감항 형식증명(airworthiness type certificate)을 발급했습니다.
1934년, 항공의 눈부신 진전을 인정하고 부 안에서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항공국은 항공상업국(Bureau of Air Commerce)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 시기에 항공상업국은 항공사들을 모아, 기존 항공로를 따라 최초의 항공교통관제(Air Traffic Control, ATC) 시설 세 곳을 만들도록 독려했습니다. 1936년에는 센터 운용 책임을 항공상업국이 넘겨받아 ATC 시설을 계속 발전시켰습니다. 초기 관제사가 지도와 칠판을 쓰고 암산으로 항로 위 항공기를 분리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ATC는 멀리 왔습니다. (역주: 국내 항공교통관제는 국토교통부 산하 체계가 담당하며, 미국 FAA ATC와 조직·절차가 다릅니다.)
1938년 민간항공법
1938년 민간항공법(Civil Aeronautics Act)은 민간항공 책임을 새로 만든 독립 기구인 민간항공당국(Civil Aeronautics Authority, CAA)으로 넘겼습니다. 이 법은 CAA에 항공요금을 규제하고 항공사가 취항할 새 노선을 정할 권한을 주었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CAA를 민간항공청(Civil Aeronautics Administration, CAA)과 민간항공위원회(Civil Aeronautics Board, CAB) 두 기관으로 나눴습니다. 둘 다 상무부 소속이었지만, CAB는 상무장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기능했습니다. 민간항공청의 역할은 ATC, 항공인과 항공기 자격, 규정 집행, 새 항공로 개발이었습니다. CAB는 안전을 높이는 규칙 제정, 사고 조사, 항공사의 경제 규제를 맡았습니다. 1946년 의회는 민간항공청에 연방 공항 지원 프로그램(Federal Aid Airport Program) 시행 책임을 주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에 민간 공항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58년 연방항공법
세기 중반이 되면 항공 교통량이 늘고 제트기가 민간항공에 들어왔습니다. 일련의 공중충돌은 항공 산업에 더 많은 규제가 필요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항공기는 대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훨씬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1958년 연방항공법(Federal Aviation Act)은 민간항공청의 역할을 이어받고 CAB의 규칙 제정 권한을 넘겨받는 새 독립 기구, 연방항공청(Federal Aviation Agency, FAA)을 만들었습니다. 더불어 FAA는 민·군 공용 항행 및 ATC 체계를 완전히 통제하게 됐습니다. FAA 초대 장(Administrator)의 영예는 공군 출신 엘우드 리처드 “피트” 케사다(Elwood Richard “Pete” Quesada) 장군에게 돌아갔습니다. 재임 기간은 1959–1961년이었습니다.
교통부(DOT)
1966년 10월 15일 의회는 미국 교통 산업을 감독할 교통부(Department of Transportation, DOT)를 설립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항공과 지상 교통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사명은 당시나 지금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국가의 핵심 이익을 충족하고 미국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빠르고 안전하며 효율적이고 접근 가능하며 편리한 교통 체계를 보장함으로써 미국을 섬기는 것입니다. DOT는 1967년 4월 1일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같은 때 연방항공청(Federal Aviation Agency)은 연방항공국(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 FAA)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CAB의 역할은 새로 만든 국가교통안전위원회(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NTSB)가 이어받았고, NTSB는 미국 내 모든 교통사고 조사를 맡았습니다. (역주: 국내 항공사고 조사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소관이며, 미국 NTSB와 별개 체계입니다.)
항공이 계속 성장하면서 FAA는 더 많은 업무를 떠안았습니다. 1960년대 항공기 납치 유행 이후 FAA는 지상과 공중 모두에서 항공 보안 책임을 늘렸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그 업무는 새로 만든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DHS)로 넘어갔습니다.
대도시를 드나드는 항공기가 많아지자 FAA는 항공기 소음 기준을 정하고 규제하며 항공의 환경 측면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1960–70년대에 FAA는 고도 500피트 이상에서의 연·기구 비행을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에는 새 연방 공항 지원 프로그램과 공항 안전에 대한 책임이 늘어나 FAA의 업무가 더 늘었습니다.
ATC 자동화
1970년대 중반 FAA는 레이더와 컴퓨터 기술을 결합한 반자동 ATC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일상 업무를 자동화함으로써, 관제사가 항공기 분리라는 핵심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했습니다. 레이더 비콘을 단 항공기의 식별, 고도, 대지속도가 관제사 스코프에 바로 나타났습니다. 효과는 있었지만, 1970년대 후반 증가한 항공 교통량을 따라가려면 체계를 더 키워야 했습니다. 증가의 한 원인은 1978년 항공사 규제완화법(Airline Deregulation Act)이 만든 경쟁 환경이었습니다. 이 법은 CAB의 항공사 경제 규제를 단계적으로 없앴고, CAB는 1984년 말에 사라졌습니다.
교통량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FAA는 1982년 1월 국가공역체계(National Airspace System, NAS)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새 계획은 항로·터미널 ATC의 더 발전된 체계, 현대화된 비행정보실, 지대공 감시와 통신의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전미항공관제사노조(PATCO) 파업
NAS 계획을 준비하는 동안 FAA는 핵심 인력의 파업에 맞닥뜨렸습니다. 경영진과 전미항공관제사노조(Professional Air Traffic Controllers Organization, PATCO) 사이의 갈등은 이미 한 차례 있었고, 그 파업이 미국 ATC와 FAA의 이후 역사에 남긴 흔적은 다음 파트에서 이어집니다.
핵심 정리
- ● 라이트 형제는 1903년 12월 17일 키티호크에서 「플라이어」로 네 번, 합계 98초를 날아 동력 비행 시대를 열었습니다.
- ● 미국 최초 정기 항공편은 1914년 1월 1일 세인트피터즈버그–탬파, 21마일·23분, 요금 1인 5달러였고 4개월간 1,205명을 실었습니다.
- ● 1926년 항공상업법이 미국 항공 규제의 초석입니다. 상무장관에게 규칙 제정, 조종사 면허, 항공기 감항 증명, 항공로·항행시설 책임을 지웠습니다.
- ● 첫 민간 조종사 면허는 1927년 4월 6일 윌리엄 P. 매크래컨 주니어, 첫 형식증명은 1927년 3월 29일 불 에어스터 CA-3입니다.
- ● 기관의 뼈대: 1938 민간항공법 → CAA, 1958 연방항공법 → FAA(초대 장 케사다, 1959–1961), 1967년 DOT 출범과 함께 Agency가 Administration으로 바뀝니다.
- ● 1978 항공사 규제완화법으로 CAB 경제 규제가 단계 폐지되고 CAB는 1984년 말 해체, FAA는 1982년 1월 NAS 계획으로 교통량 증가에 대응합니다.
- – 국내 자격·관제·사고조사는 항공안전법·국토교통부·TS 기준이 따로 있습니다. 미국 연혁을 그대로 국내 시험에 대입하지 마세요.
이 글은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Pilot’s Handbook of Aeronautical Knowledge(FAA-H-8083-25B)(퍼블릭 도메인)를 번역·재구성한 시리즈입니다.